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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024년에는 105주년이 되는 3.1절입니다. 3.1 운동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알고 나면 똑똑해지는 5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3.1 운동은 단 하루만 했던 운동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3.1 운동은 국내에서만 한정된 운동이었을까요? 역시 아닙니다. 3.1 운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관순열사와 몇몇 소수인원만 참여했을까요? 이것 역시 아닙니다. 3.1 운동은 안전이 보장된 시위였을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독립선언서는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을까요? 맞습니다.

     

     

    1️⃣ 두 달 넘게 지속이 된 3.1 운동

    우리는 삼일절을 하루만 기념하고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 3.1 운동은 두 달 넘게 지속된 항일 독립운동입니다. 하지만 단 하루 3월 1일이라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에서 시작해 초기에는 북부 중심 그리고 남부지역까지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3월 말~ 4월 초에는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며 3.1 운동의 절정기를 맞았습니다. 1919년 3~5월까지 총 1,798건의 시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2️⃣ 해외에서도 참여한 3.1 운동

    국내만의 운동이 아닌 해외로 멀리멀리 퍼졌어요. 굉장한 애국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만주, 연해주, 러시아, 미국 등 국외에 거주하던 한국인에게도 퍼져나가 1919년 3월~5월까지 110건이 넘는 시위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3️⃣ 두 집당 한 명 꼴로 참여한 3.1 운동

    3.1 운동 참여자는 100만~2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평균 150만 명으로 보면 1919년 말 조선인 인구(1,678만여 명) 기준으로 당시 한 집의 가족을 5~6명으로 본다면 두 집당 한 명은 3.1 운동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3.1 운동의 기폭제가 된 비밀리에 인쇄된 독립선언서

     

    만세의 물결 속에서 독립선언서는 퍼졌습니다. 독립선언서는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낭독하면서 3.1 운동이 대장정이 시작됐습니다. 비밀리에 인쇄된 2만 1천 매의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각지에 배포가 되었습니다.

     

     

    5️⃣ 목숨을 건 시위였던 3.1 운동

    3.1 운동에 대해 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연구 참고용 자료에 나와 있는 사망자만 780~1,148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상자 조사 자체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 독립운동가가 집계한 사망자 수는 7500여 명이며 부상자는 1만 5천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105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독립을 염원하며 이룬 만세의 물결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기록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있으며 3.1 운동의 참가자나 시위건수, 사상자 등 실제수치는 이보다도 훨씬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모두 게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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